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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스캔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사랑이야기

by 스카이랑 2021.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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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이 팡세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세계의 역사는 변했을 것이다라고 했답니다.

, 클레오파트라가 절세미인이 아니었다면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빠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악티움 해전의 패배와 안토니우스가 죽지 않았을 것이며 옥타비아누스가 황제가 되어 공화국이 무너지지 않아 역사가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클레오파트라

1.    크레오파트트라 7세

수천 년 전 이집트의 여왕이었던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의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으며 두 남자를 뒤에서 조종하여 막대한 부와 권력을 휘두르며 이집트를 지배했던 여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클레오파트라가 우리가 생각하는 절세미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녀의 얼굴이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초상화나 동전에 새겨진 옆 얼굴을 보면 매부리코에 목에 살이 찐 모습이고 약간 남성적인 얼굴일 거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근친혼의 결과로 균형적인 외형이 아닌 극대화 된 특징이 상당히 변형된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프톨레아이오스 왕조는 순수 혈통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근친혼을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인 프톨레마이오스 12세와 그의 여동생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클레오파트라도 아버지 사후 왕권을 위해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해서 공동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남다른 권력욕을 가진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식 교육을 받아서 문학뿐 아니라 역사, 수사학, 천문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습득해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고 여러 외국어를 구사할 줄 알았으며 뛰어난 언변과 쾌활한 성격으로 다 방면에서 매력적인 여성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이러한 능력으로 당시 최강국인 로마와의 충돌을 피하고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자신의 왕가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외교적으로 사용했습니다.

클레오파트라

2.    안토니우스

브루투스 일당에 의해 카이사르가 암살 당한 후 카이사르의 오른팔이자 집정관이었던 안토니우스가 권력을 차지하게 됩니다.

마치 헤라클레스의 후손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외모와 군사적 자질을 갖춘 안토니우스는 신망이 두터웠다고 합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의 죽음을 애도하는 연설에서 로마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원로원을 소집해서 사태를 수습하며 로마의 권력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18세의 옥타비아누스가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지명되면서 로마의 권력 구도는 안토니우스파와 옥타비아누스파로 나뉘게 됩니다.

3.    클레오파트라 7세와 안토니우스

로마의 권력을 누가 갖느냐의 치열한 권력 다툼을 바라보며 클레오파트라 7세는 이집트와 프톨레오마이오스 왕가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한쪽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누가 이기는지를 저울질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아직 나이가 어린 옥타비아누스보다 카이사르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강력한 세력을 이룬 안토니우스가 됩니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안토니우스를 이집트로 불러들여 유혹하였는데 처음엔 클레오파트라를 멀리하던 안토니우스도 결국 그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클레오파트라도 정치적 선택에 의해 안토니우스를 유혹했지만 그의 매력에 빠져 결국 사랑하게 됩니다.

클레오파트라를 사랑하게 된 안토니우스는 그녀의 요구를 수용하여 로마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클레오파트라 7세와 결혼하고 클레오파트라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의 후계권을 보장하게 됩니다.

클레오파트라

4.    악티움 해전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사랑을 속삭이며 방탕한 세월을 보내는 사이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제국의 통치권을 장악하게 되고 옥타비아누스의 방탕한 생활을 빌미 삼아 원로원을 설득해서 이집트 정벌에 나서게 됩니다.

클레오파트라 7세와 이집트의 운명이 짊어진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연합군은 옥타비아누스와 악티움해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악티움 해전입니다.

클레오파트라

악티움 해를 붉게 물들일 정도로 치열한 싸움에서 패배한 안토니우스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클레오파트라 7세 역시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포로가 되어 로마로 끌려가 모욕을 당하지 않는 마지막 방법인 자살을 선택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옷과 보석으로 치장하고 꽃 속에 누워 일부러 풀어둔 독사에 물려 죽음을 맞이 했다고 합니다.

클레오파트라 7세 의 죽음으로 프톨레마이오스 왕가는 끝이 나고 이집트 또한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했다고 합니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영웅들을 현혹시킨 요부, 팜므파탈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나라와 왕조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정치가이자 지략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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